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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미사의 말씀의 전례는 이사야 예언서로 시작된다. "주님께서 너희에게 징조를 보여주시리니,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불리리라."고 한다. 이는 곧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오늘 복음은 이 예언이 우리에게 성취되었음을 선포한다. 그 징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낳으신 동정녀 마리아이다. 예수성탄의 신비는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하나가 되신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 우리 곁에 계시고자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다. 이말은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하느님은 창조이래 인간과 함께 계셨다. 그러나 예언자들을 통하여 먼 곳에서 대화하시는 분이었을 뿐이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는 매우 어렵고도 불안정한 계약이 있었을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하느님은 인류의 인격 안에 들어오셨다. 그분은 우리 중의 하나가 되셨다. 우리와 대화하시고 우리를 죄의 상태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분이 오시어 맺은 계약은 새롭고 영원한 계약이 되었다. 왜냐하면 하느님과 인간 양쪽이 한 인격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다시는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이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느님이요, 참 사람으로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형제가 되신다. 그분은 "육으로 말하면 다윗의 후손이시며 영으로 말하면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그분이 만일 우리곁에만 계실뿐 하느님이 아니시라면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고 구세주가 되지 못하실 것이다. 반면에 그분이 만일 단지 신일뿐 우리곁에 계시지 않는다면 그분은 우리 인류와는 아무 상관도 없을 것이요 우리의 희망과는 거리가 먼 흥미없는 신일뿐이다. 교회사에 보면 한 때는 하느님이 인간과 함께 계시다는 점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하며 인간 예수를 한때 가현(假現)이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고 하며 하느님이 어떻게 고통받고 죽을 수 있느냐며 주장하던 이단학설(Docetism)이 있었다. 한편 예수는 다만 인간일뿐 신이 아니라고 하던 아리아니즘이 교회를 어지럽혔으나 오늘날도 예수는 단지 인간일뿐 슈퍼스타(Super star)나 위대한 인물에 불과하다고 하는 신판 아리아니즘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결과는 그리스도의 기적을 안 믿으려하고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만 믿을 수 있다며 인간의 머리로 하느님의 신비를 파헤치려는 무모함을 범하고 있다. 이는 마치 구구단을 갖 띤 초등학교 1학년생이 미적분을 하겠다고 넘비는 것과 같이 무모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않으려는 자는 지혜롭다는 평을 들을지 모르지만 복된 자는 못된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셨다. 이 그리스도의 질문에 교회는 베드로의 대답과 함께 "선생님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고 응답해왔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33년의 짧은 생애였지만 그분은 "나는 세말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하신바 있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후 새로운 존재방식으로 우리와 함께 머무르신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누가 우리를 거역하겠는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겠는가?"(로마8,35). 그렇다! 그분을 우리에게서 떼어놓을 수 있는 세력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만을 위해 살 때 우리는 스스로를 그리스도로부터 떼어놓는 것이 된다. 즉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분을 멀리하는 것이 된다. 성탄절을 기해 교회를 통해 행해지는 판공성사에서 주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가 만일 성사를 외면하면 우리 스스로를 그리스도로부터 외면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그분을 위해서 살고 그분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성탄절은 우리 크리스찬에게 "지금이야말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일만한 때" 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항상 우리와 함께 머물고 계신다. 특히 성사적으로 실제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성체성사 안에서 우리음식이 되어 오시기까지 하신다. 오늘 화답송에서 "주님의 산으로 오를 이 누구인고? 그 손은 깨끗하고 마음 정한 이, 헛군데에 마음을 쓰지 않는 이로다" 혹 우리가 주님의 제단에 깨끗한 손과 정결한 마음의 준비가 부족하다면 겸손한 마음과 통회의 마음을 봉헌하자. 그분은 결코 우리의 마음과 정성이 미약하더라도 우리의 봉헌의 손길을 내치지 않으실 것이다. 혹 아하즈처럼 주님의 징조를 청하기가 두려워 주저하는 마음이 있다면 하느님의 뜻보다 내 뜻을 위해 몸을 사리는 마음이 내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니, 통째로 마음을 비워 성요셉과 같이 약혼녀 마리아의 성령으로 잉태하였음을 알리는 천사의 말을 이성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신비로서 수용하는 신덕을 발하자. 옛날에 한 열심한 신자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기도중에 탈혼이 되어 자기가 걸어온 인생의 발자취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런데 자기 옆에 또다른 발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래서 예수님께 물었더니 항상 자기곁에 예수님이 동행하셨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런데 간혹 동행하던 예수님의 발자국이 없는 곳이 나타났다. 그때가 언제인가 살펴보니 그의 인생이 역경에 처하였을 때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그 이유를 물으니 "그때는 내가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네가 나를 짊어지고 갔기 때문에 내 발자국은 없고 네발자국만 있었던 것이다"라고 대답하셨다. 그래서 그는 탈혼에서 깨어나 역경에 처할수록 주님을 더욱 가까이 모시고 사는 것이니 역경이 곧 은총의 시기임을 깨닫고 감사드렸다고 한다. 이와같이 우리는 역경이 곧 은총임을 인정하고 주님께 감사드려야한다. 임마누엘 하느님의 탄생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준다. 하느님이 함께하시는 삶은 얼마나 기쁘고 마음 든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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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2266 가해 대림제1주일(이사2,1-5; 로마13,11-14; 마태24,37-44)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2265 가해 대림2주일(이사11,1-10; 로마15,4-9; 마태3,1-12)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2264 마리아론 연재 1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2263 대림 3주일(이사35,1-10; 야고5,7-10; 마태11,2-11)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 대림 4주일(이사7,10-14; 로마1,1-7; 마태1,18-24)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2261 성탄성야미사(이사9,1-6; 디도2,11-14; 루가2,1-14)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2260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축일(집회3,3-17; 골로3,12-21; 마태2,13-23)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2259 주님의 공현 대축일(이사60,1-6; 에페3,2-6; 마태2,1-12)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2258 주님세례축일(이사42,1-7; 행전10,34-38; 마태3,13-17)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2257 연중 2주일(이사49,3-6; 1고린1,1-3; 요한1,29-34)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2256 연중 3주일(이사8,23-9,3; 1고린1,10-17; 마태4,12-23)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2255 연중4주일(스바2,3;3,12-13; 1고린1,26-31; 마태5,1-12)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2254 연중 5주일(이사58,7-10; 1고린2,1-5; 마태5,13-16)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2253 사순 제1주일(창세2,7-3,7; 로마5,12-19; 마태4,1-11)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2252 사순 2주일(창세12,1-4; 2디모1,8-10; 마태17,1-9)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2251 사순 3주일(출애17,3-7; 로마5,1-25-8; 요한4,5-42)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2250 사순 제4주일(1사무 16,1-13; 에페 5,8-14; 요한 9,1-41)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2249 사순 제 5주일(에제37,12-14; 로마8,8-11; 요한11,1-45)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2248 성주간 강론, 부활주일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2247 부활 제2주일(사도2,42-47; 1베드로1,3-9; 요한20,19-31) 이관배 스테파노 신부 200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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