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22.07.14 05:45

2022년 7월 14일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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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 걱정없이 살아가는 듯 보이는 사람도 실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살기 위해 혹은 살아남기 위해 하루 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삶입니다.


삶의 무게가 힘들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그 무게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일시적이나마 삶의 걱정을 잊어보려고 술을 많이 마시기도 하고 나쁜 약물들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는 없습니다. 취하거나 환각적인 상태에서는 일시적인 해방감을 느끼지만 다시 제 정신이 들어 현실로 돌아오면, 그 현실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각박한 삶의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합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당신에게로 와서 그것을 배운다면 우리가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계시는데 정작 그 사람은 엉뚱한 데서 해결책을 찾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문제를 해결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면 다시 성당에 나가겠다. 지금 이런 심정으로는 하느님 앞에 못 가겠다.’ 


우리가 바라는 안식과 예수님께서 주고자 하시는 안식은 사뭇 다를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멍에는 편하고 당신 짐은 가볍다고 하십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멍에가 편하고 짐이 가벼울 리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 멍에와 내 짐’은 대체 무엇이기에 편하고 가볍다고 하시는 것일까요? 신약 성경에서 멍에는 ‘율법’을 의미하는 상징어입니다 유다 종교 지도자들이 율법의 외형적 준행에 집착한 나머지 율법의 근본정신인 사랑과 자비를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거운 짐을 지우는 ‘엄격한 율법주의’를 치우시고, 당신의 십자가를 통해 성취되는 기쁜 소식, 즉 복음을 제시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멍에는 다름 아닌 ‘십자가’였던 것입니다. 당신 스스로 십자가 죽음을 당하셨지만, 그 십자가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위로와 구원을 가져다주셨습니다.


하느님은 내가 마음 편하고 기쁠 때만 찾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길 잃고 헤메는 양들, 고생하며 무거운 짐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진짜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내가 힘들 때, 위로가 필요할 때, 마음이 짜증스럽고 원망으로 가득할 때. 그럴 때 제일 먼저 달려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상대가 바로 하느님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주는 멍에란 이웃의 죄를 용서하여 주는 마음이요, 모든 것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기는 의탁일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그분의 삶을 좇아 살아간다는 것은 그분의 멍에를 메고 살아가는 것이겠지만, 그분의 멍에는 결코 무겁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능력에 꼭 알맞은 멍에를 준비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십자가를 주실 때 우리가 질 수 있을 만큼의 십자가를 주시고, 또한 견뎌낼 수 있는 힘도 동시에 주신다. 십자가를 지는 만큼 우리는 성숙할 수 있고,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하는 주님을 닮아갈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의 부르심에 기쁘게 응답하고 살다가 우리 앞에 신앙으로 인한 고통과 시련이 올 때면 공연히 세례를 받았다고 고민하는 우리는 아닌가요? 이 때에 신앙인의 고민과 번뇌를 이기는 힘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 고민 안에 함께 하시고 있음을 우리가 깨닫고 그것이 바로 내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임을 알고, 그 십자가를 삶이 다하는 날까지 지고 간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부활시킬 것이며, 우리의 고민을 당신의 영광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김형진 로무알도 신부(SS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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