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22.07.21 06:51

2022년 7월 21일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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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처럼 비유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당연히 어려워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그들은 늘 어려운 말로써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달랐습니다.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 우리들의 일상 삶 안에서 쉽게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을 통해서 하느님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지요. 이러한 차이 때문에 제자들은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라도 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들이 알아듣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어려운 말로써 자신들이 똑똑하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만 하면 그만이었던 것이지요.  


유다인들 절대 다수는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믿음이 있는 제자들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들을 알게 해주셨지만, 믿음이 없는 유다인들에게는 그렇게 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비유들의 뜻을 알아듣는 열린 마음을 갖고 있는 제자들에게 하느님께서 알아듣는 은혜를 더 크게 주시고, 닫힌 마음을 가진 유다인들은 그 은혜를 더욱이 받지 못하게 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자들은 점점 더 잘 알아듣게 되고 유다인들은 점점 더 못 알아듣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원래 비유는 알아듣기 쉽게 하려고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비유가 이해하기 힘든 수수께끼처럼 들립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보아도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들어도 듣지 못하고’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어도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서 ‘깨달음’이라는 단어는 ‘믿음’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비유를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머리로써만 아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알 때 그리스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며, 하느님 나라의 신비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눈은 세상 어디에서 어떠한 처지에 있든 하느님께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군중이 신비를 쉽게 알아듣기 위한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그 이유 설명을 요청하는 대목에서는 예수님의 설교를 악의적으로 반대하는 무리를 겨냥하여 이사야 예언을 적용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 나라의 현실을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게 하고, 영적인 귀로 들을 수 있어서 깨닫게 함으로써, 지금 여기서부터 그 현실을 살아가도록 초대하시려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곧 하느님의 나라이며 신비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인간의 지성을 통해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분의 나라를 명확하고 엄밀하게 정의하는 일 역시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이해한다는 것은,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고, 하느님 나라 안에 머무르며,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는 바로 그 삶을 생활화하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믿음과 희망과 사랑에서 나오는 ‘지식’이 필요한데, 이것들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받아들이기 위해 그 안에 머무는 기도의 시간을 가집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착한 일을 하며 하느님 선물을 얻어 누립시다.


                                                                                                                                    김형진 로무알도 신부(SS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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