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4.08.13 09:48

2014-8-13-19주간-수-에제9,1-7; 10,18-22; 마태18,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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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주간--에제9,1-7; 10,18-22; 마태18,15-20

 

에제키엘 예언자는 남유다가 바빌론에게 멸망하기 전에 유배지에 끌려가(BC 597) 크발강가(지금의 텔 아비브)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인물이다. 동시대에 다니엘은 바빌론 왕궁에서 임금의 꿈을 해석하여 왕국의 미래와 장차 도래할 세계에 대해 묵시를 본 인물이다. 피지배민족이 정복국가의 왕 앞에서 멸망하게 될 왕국의 미래에 대해 당당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던 신앙 속에서 역사는 하느님의 손바닥 안에 있음을 알 수 있고, 비록 하느님께 불순명한 죄로 유배지에 끌려간 선민들 속에서도 하느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오늘 에제키엘 예언자에게 바빌론에게 멸망하게 될 유다의 운명에 대해 설명하시는 하느님의 목메인 호소를 들어보자. 하느님은 이도성의 징벌이 다가왔다. 저마다 파멸의 무기를 들고 나와라.”하고 천사들에게 명하신다. 당신의 도성을 파괴하라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는 하느님의 심정을 헤아려 보자. 누가 자기 집을 파괴하라고 명하겠나?

그 이유를 하느님은 이렇게 설명하신다. “너는 저 도성 가운데로, 예루살렘 가운데로 돌아다니면서, 그 안에서 저질러지는 그 모든 역겨운 짓 때문에 탄식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해놓아라.”

즉 우상숭배로 온갖 역겨운 짓이 예루살렘 도성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마음 아파하며 탄식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이마에 표를 해두고 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하라고 하신다.

이 파괴의 징벌을 먼저 성전에서부터 시작하라고 하신다.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 문지방에서 나와 커룹들과 함께 떠나신다. 당신 성전을 파괴하라고 명하시는 하느님의 심정과 정들었던 당신 성전을 떠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상상해보자.

예수님은 성전정화 때,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만에 다시 세우리라.”(요한2,19)고 하셨다. 성전에서 장사군들이 사고 파는 폭리행위가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었기에 강도의 소굴이 된 성전을 차라리 허물라고 하셨던 것이다. 오늘 1독서인 에제키엘 예언서의 더럽혀진 성전을 차라리 파괴하라 명하시고, 성전문을 떠나시는 하느님의 심정과 같은 참람한 심경이셨을 것이다. 오늘 우리 마음의 성전도 돌아보자. 하느님이 역겨워하시는 내용이 들어있지는 않은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하늘 아버지도 성모 마리아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셔야한다고 동의한다. 원수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하는 음성과 일치한다. 예수님 십자가 사건 앞에 인류와 하느님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동의 하였다. 그러나 그 동기가 같을 수 없다. 구원과 멸망이 엇갈리는 순간이다. 성부께서 그리고 성모님이 아들의 십자가를 동의하신 이유는 인류의 영혼 구원을 위해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에 비통한 마음으로 십자가를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나 원수들의 동의는 미움과 적의 분노가 원인인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구원의 열쇠이며 동시에 걸림돌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집짓는 자들이 내버렸던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는 걸림돌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라는 십자가의 주사위는 세상에 이미 던져졌다.

믿고 구원을 받든지, 불신하여 멸망에 이르든지 두 길밖에는 없다. 중립지대는 없는 것이다. 줄을 잘 서는 것이 중요하다. 구원의 밧줄과 멸망의 밧줄은 처음은 별 차이 없는 것 같아도 그 끝은 서로 만날 수 없는 천국과 멸망의 심연인 것이다.

연약한 우리는 하루 중에도 이 밧줄 저 밧줄을 옮겨 집기 쉬운 것이다. 매순간 내가 어느 밧줄을 잡고 있는지 그 끝을 바라보는 지혜를 구하며 하루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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