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4.07.28 08:53

2014-7-28-17주간-월-예레13,1-11; 마태13,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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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주간--예레13,1-11; 마태13,31-35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 하늘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하신다.

둘 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창대한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가 창대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 작은 것 안에서 숨어서 일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겨자씨안에서 싹을 틔우고 성장하도록 섭리하신믄 주님의 손길을 느끼고 작은 누룩 안에서 온 빵을 부풀리시는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을 찬양하고 경탄해야하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이다. 신앙의 눈은 바로 이 보이지 않게 숨어서 일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발견하고 경탄할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오늘 1독서의 내용은 예레미야서 13장의 내용이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남유다 멸망기의 유대인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우상숭배에 떨어진 패역한 세대를 향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그들의 미움을 사 끝내는 돌에 맞아 죽은 비운의 예언자다. 그래서 그의 별명을 눈물의 예언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른 예언자들의 말은 간혹 백성들이 귀 기울여 듣기도 하였지만,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은 단 한번도 경청하지 않고 지난 후에는 예레미야의 말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그들은 도무지 듣지 않고 거역하기만 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그렇게 살면 망한다. 망한다는 말만 전하기 때문이었다. 오늘 말씀에서 하느님은 예레미야에게 아마포 띠를 사서 허리에 두르고 있다가 그것을 유프라테스 강 바위틈에 숨겨두어라하신 다음 얼마 지난 후 다시 꺼내오너라고 하시자 가서 보니 다 썩어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그러자 주님이 나도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그처럼 썩혀 버리겠다고 맹세하신다.

유대인들의 교만은 무엇인가? 하느님의 말씀을 마다하고 제 고집스러운 마음으로 다른 신들을 쫓아다니며 그것들을 섬기고 예배한 패역한 배신행위인 것이다. 결국이 백성은 바빌론에게 패망하고 70년간 바빌론에 끌려가 종살이를 하게 된다. 아마포띠가 주인의 허리에 매어있을 때 썩지 않고 빛이 나고 주인과 함께 존중받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느님곁에 붙어있을 때만 거룩함을 보존할 수 있고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허리띠가 주인이 살아있는 동안 빛을 발하고 사용가치가 있듯이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 하느님의 허리에 붙어있을 때만 그분의 생명인 영생을 누릴 수 있고 그분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임금의 허리띠는 임금이 가는 곳마다 임금의 영예를 누리고 임금이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때 같은 영광을 함께 누리는 것이 아닌가?

만일 임금의 띠가 벗거져 무당의 허리에 둘러 있다면 한낱 복채를 바라고 춤추는 무당의 춤값에 팔리는 넉마조각에 불과할 것이다.

이스라엘민족, 그들은 하느님의 사제백성들로 간택된 제사장나라 백성들이다. 그렇거늘 이방민족들을 하느님께로 이끌어들이라고 선택한 그들이 오히려 이방신을 섬기며 하느님을 거역한다면 이는 썩어버린 띠와 같은 것이다. 그 띠를 유프라테스 강가 바위 속에 숨겨두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유프라테스강은 메소포타미아 바빌론의 바알 우상의 소굴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 바알 우상을 섬기는 실상을 풍자한 것이다.

그들의 운명은 만일 하느님께로 돌이키지 않으면 바로 그 썩어버린 띠처럼 되고 말리라는 비유인 것이다.

이 띠가 사람의 허리에 붙어있듯이, 내가 온 이스라엘 집안과 온 유다 집안을 나에게 붙어있게 한 것은 그들이 내 백성이 되어 명성과 칭송과 영광을 얻게 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이 나라는 바빌론에게 멸망하고 만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슬픈 역사이며 눈물의 예언자인 예레미야의 눈물은 곧 하느님의 눈물인 것이다. 이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오늘도 눈물을 흘리고 계신 것이다. 이 시대에 성시간 기도를 드리라고 요구하시는 주님의 뜻은 여전히 겟세마니 에수님은 우리를 위해 울고 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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