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5.04.16 10:17

2015-4-18-성모신심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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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첫토요일 신심미사(주님 부활 때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묵시21,1-5; 마태28,1-10

 

부활하신 주님은 사기지은(四奇之恩)을 입고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에게 나타나시어 <<평안하냐?>>고 말씀하셨다. 다른 여자들이 가까이 가서 그리스도의 두 발을 붙잡고 엎드려 절하였다. 그리스도께서 그 여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제자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갈릴래아는 제자들을 모으시던 장소이다. 고기 낚는 어부들을 불러 모아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신 유서깊은 장소이다. 이제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옛 직업으로 되돌아간 제자들을 찾아가시어 다시금 영혼을 낚는 어부로 부르시기 위해 갈릴래아로 찾아가신다. 여기서 교회가 탄생하며 만방에 전교할 사명이 부여된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후 제일 먼저 당신 어머니 마리아에게 나타나신다. 제자들은 예수님 부활의 뜻도 이해하지 못했고 믿지도 못했지만, 마리아는 예수님 부활을 의심 없이 믿었던 것이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가장 깊이 참여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순교자의 왕이라 한다면 마리아는 순교자의 모후요, 그리스도를 붉은 순교자 즉 피의 순교자라 한다면 마리아는 백의의 순교자 즉 마음 치명자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수난 길에 항상 동반자가 되셨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까지 함께 동행하시면서 십자가 아래에서도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확신을 저버리지 않으셨던 유일한 여인이었다.

원죄가 없으셨기에 낙원에서의 영원히 죽지 않는 것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었다고 교리상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고통의 면에서도 그리스도와 함께 철저한 자기부정의 죽음의 세계를 체험하신 마리아로서는 영신적 부활에 대한 신앙을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기에 충분하였다. "하나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고 <<제 목숨을 살리려는 자는 죽고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는 복음의 진리를 터득하고 믿었던 것이다.

1독서에서의 <<새 하늘과 새 땅>>은 부활 후의 세계를 의미한다. 하늘은 부활한 영혼을, 새 땅은 부활한 육신을 지칭하며, 이전의 하늘은 현세의 영혼세계를, 이전의 땅은 현세의 육신세계를, 이전의 바다는 현세의 인생무덤과 죽음의 바다를 의미한다. 이러한 덧없는 현세의 무덤과 죽음의 바다는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 곧 영혼 육신의 부활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맞을 신부처럼 단장하였다고 함은 새 하늘궁전이 부활한 영혼들을 맞을 준비를 갖춘 광경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지상의 예루살렘이 신랑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박대하고 죽이자 하늘의 새 예루살렘이 이 분을 모시러 내려온다. 세상의 지배자인 사탄이 올무로 쳐놓은 죽음의 바다가 삼켜버린 그리스도의 생명이 다시는 죽지 않는 몸으로 부활하신 것이다.

이제 새 예루살렘이 건설되었으니 하느님은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즉 원죄에 대한 보속으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인류가 다시 천국본향에 돌아가 다시는 원죄에 대한 보속거리였던 고통도 죽음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는 사기지은의 특은을 받고 하느님 아버지 슬하에서 영생 영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아담의 원죄로 인한 낡은 세상은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두 개의 옥좌를 가지고 계셨다. 하나는 하늘 아버지 품이요, 하나는 지상의 어머니 마리아의 품이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으셨기에 시체를 염할 수의도 향료도 준비하지 않으셨지만 그러나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예수님 시신을 염하기 위해 수의와 향유를 들고 무덤으로 달려갔다.

성모님은 아드님이 생전에 하였던 말을 상기하신다.

<<이 악하고 비뚤어진 세대가 기적을 요구하지만 그들에게 보여줄 기적은 요나의 기적밖에는 없다.>> 이와 같이 사람의 아들이 사흘 낮과 밤을 땅속에서 지내야 할 것이다.

<<참 하느님의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울 것이다.>> 이런 말씀들을 무덤 주위에 둘러 있는 사람들에게 상기시켜주시고, 죽었던 나자로를 나흘 만에 다시 살려주신 일,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신 일들을 상기시키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신덕을 갖도록 종용하지만 그들은 믿지 못했다. 빈 무덤을 확인하고 천사의 말과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주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성모님은 무덤에 다시 찾아갈 필요가 없으셨다. 왜냐하면 이미 주님이 부활하시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유언하신 대로 성모님은 제자들의 어머니가 되시고 제자단의 구심점이 되시어 제자들의 신덕을 견고히 하여 주시고 다가오는 오순절의 성령강림을 기다리도록 제자단의 신덕의 지주가 되어 주신다. 신덕이 부족했던 제자들의 신앙을 견고케 해 주셨듯이 우리들의 부활에 대한 약한 믿음도 견고케 해 주시도록 성모님께 청하자.

부활에 대한 희망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십자가를 꿋꿋하게 지고 가는 데 큰 힘이 된다. 성모님이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기에 과성은혜를 갖추고 계셨으므로 사욕편정의 본성적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으셨지만 우리 인간은 원죄의 탓으로 사욕편정의 인간본성이 살아있어 이를 철저하게 끊어야만 부활이라는 초성생명을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의 인간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는 본성의 죽음을 체험해야만 부활을 체험할 수 있고 믿을 수 있게 된다. 예수님과 성모님은 사실은 죽을 필연적인 이유도 없는 분들이었지만 우리에게 세상에 대해 죽는 샘플을 보여주기 위해 죽어주셨던 것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다. 나의 본성의 무덤 위에 부활의 싹이 움터 나온다. 부활을 성급하게 재촉하기 전에 먼저 내 본성을 십자가에 못박고 사욕편정을 무덤에 파묻자. 이 길에 있어 가장 든든한 길 안내자이신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자.

.......................................

묵상

오늘 복음에서 주인공이신 성모님이 등장하지 않는다.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에 달려가는 데 성모님은 안 계신다.

주인공이 빠진 전례의 복음이 이상해 보인다.

성모님은 십자가의 길에도 동행하셨고 예수님의 죽음을 가장 마음아파하신 어머니시다. 막달레나도 십자가의 길에 성모님을 부축해드리며 동행하였다. 필경 막달레나는 성모님을 모시고 같이 있었거나 적어도 한 두 번 찾아 뵙고 위로해드렸을 것이다. 그런데 성모님은 예수님 부활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성모님은 원죄없는 분이라서 과성은혜를 손상받지 않으셨고 지혜가 밝으시므로 예수님 부활에 대해 굳게 믿으셨다. 막달레나에게 성모님은 틀림없이 당신이 확신하고 있는 예수부활에 대해 언질을 주었을 것이다.

막달레나는 믿겨지지 않아 그럴 리가 있느냐?’고 대꾸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성모님은 당신 주장을 우기며 상대방의 의견을 굳이 꺾고 자기 확신을 그녀에게 억지로 주입시키려하지 않으시고 침묵 중에 기도하셨을 것이다.

막달레나가 무덤에 달려가기 전에 성모님께 같이 가자고 권유했을 것이다. 그 때도 다시 한번 성모님은 조용히 그녀에게 예수님은 부활하셨다는 것을 확신시켜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막달레나를 비롯하여 여인들은 믿지 않았고 무덤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무덤으로 달려간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러 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시신에 몰약을 발라드리고 안장시켜드리기 위함이었다. 즉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러간 것이 아니라 죽으신 예수님을 만나러 달려간 것이다.

여기서 성모님의 태도를 묵상해보자.

우리 같으면 이런 경우 자기 확신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주입시키려고 우리 내기하자!” 하며 언성을 높이고 상대방에 대해 답답하다고 논쟁을 벌일만하다.

무덤을 다녀온 여인들에게 그것봐라. 내말이 맞지 않느냐?”며 자랑삼아 으스대고 상대방에게 무안을 주기가 십상이다.

그런데 성모님은 상대방의 의견을 굳이 꺾으려하지 않고 조요히 기도하며 주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상대방이 못 알아들으면 시간이 지나면 주님께서 깨우쳐 주시고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이니까 주님 안배에 맡기고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 이것이 오늘 전례에서 성모님께 우리가 배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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