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5.03.22 14:40

2015-3-28-사순5주간 토-(에제37,21-28; 요한11,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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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5주간 토-(에제37,21-28; 요한11,45-56)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가 예수님이 죽은 라자로를 살려내시니까, 이제는 결정적으로 자기들의 위기의식을 느껴 예수님을 처형하기로 최고의회에서 결의를 한다. 유다인들이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하며 좌불안석이다.

그때 대사제 카야파가 나서서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 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더 낫다는 사실을 헤아리지 못합니까?”하며 제안한다.

이는 예수님께서 민족들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흩어진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요한사도는 주석한다.

여기서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없애려는 의도가 불순한 동기에서였음이 드러난다. 군중들이 예수님께로 몰려가니까 이를 막을 수가 없고 자기들의 종교지도자로서의 위치에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세례자 요한이 자기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가는 것을 오히려 환영하며 기꺼이 보내주었던 것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유다인들의 시기 질투심이 최고의회에서 예수처형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했던 것이다.

내일부터 성주간이 시작되고 성삼일전례에서 예수님의 수난복음이 읽혀지게 된다. 이 세상에 죽으러 오신 예수님, 당신의 죽음을 오히려 영광이라 하시며 이제 때가 왔습니다. 아버지의 영광과 아들의 영광을 드러내주십시오하며 요한 17장에서 기도하신 주님이시다.

우리는 세속적인 부귀영화와 출세를 영광이라 하는데 주님은 우리를 위해 죽어주시는 것을 당신의 영광이라 하시니 십자가를 바라보며 죄송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들 수 없다.

이제 수난의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통회의 눈물이다. 자비의 때에 통회의 눈물만이 주님께 바칠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 될 수 있다.

.............................

묵상

세상에는 두가지 죽음관이 있다.

하나는 가야파대사제의 철학처럼 백성전체를 위해서 한 사람이 죽어주어야 한다는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논리에 입각한 죽음관이다. 이는 너죽고 나살자는 이기적인 죽음관이요, 나 살기 위해 네가 희생되라는 요구이다. 100마리 중 한두 마리는 잃어버려도 찾지 않겠다는 경제논리를 당연시하는 죽음관이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에게서 볼 수 있는 죽음관으로, 나자신의 죽음으로 만백성을 구원하는 이타적인 죽음관이다. 너를 위해 내가 희생되겠다는 십자가의 논리이다. 양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착한 목자상이다. “너를 위해 내가 죽어주마!”(殺身成仁). 100마리 중 한 마리를 잃었으면 끝까지 그 한 마리를 찾아 나서며 찾으면 어깨에 울러매고 기뻐하며 돌아와 잔치를 벌이는 착한 목자상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가야파의 이기적이고 경제적인 죽음관은 결국 나 살기 위해 너를 희생하려다가 결국 둘 다 죽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리스도를 배척한 그들은 나라 잃은 백성으로 2000년을 떠돌며 보속의 생활을 하고 있다.

두 번째 그리스도의 이타적인 죽음관은 인류를 구원하였고 그리스도는 죽으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시어 너 살고 나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스도의 이타적인 죽음관은 비경제적이지만 백성들은 가야파 대사제 쪽에 줄서지 않고 그리스도편에 줄을 선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잃어버린 양에 해당된다는 양심의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자를 풀이해보면 양() 밑에 내() 들어갈 때 의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어린양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품에 안길 때 우리가 구원된다는 의미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내가 그리스도처럼 남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삶을 살아야 살 수 있음을 웅변해주고 있다.

살고자하는 자 죽을 것이요, 죽고자하는 자는 살리라”(欲生者死, 欲死者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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