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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잘되면 내덕이요, 안되면 조상탓"이라는 속담이 있다. 이스라엘의 속담에도 "아비가 설익은 포도를 먹으면 자식의 이가 시큼해진다"는 말이 있다. 이 때문에 자신들의 윤리적인 책임을 조상탓으로 돌리곤 한다. 조상탓, 사회탓, 네탓 팔자탓으로 돌리고 내탓은 없다는 책임회피적 발상에서 나온 말이다. 심지어는 하느님께까지 탓을 돌리고 반감을 갖거나 등을 돌리기까지 한다. 이에 하느님은 반문하신다. "너희는 이 하느님 야훼가 하는 일이 부당하다고 한다마는, 이스라엘족속들아, 들어라. 너희가 하는 일이 부당하지 내가 하는 일이 부당하냐? 옳게 살던 자라도 그 옳은 길을 버리고 악하게 살다가 죽는다면 그것은 자기가 악하게 산 탓으로 죽는 것이다. 못된 행실을 하다가도 그 못된 행실을 털어버리고 돌아와서 바로 살면 그는 자기 목숨을 건지는 것이다. 두려운 생각으로, 거역하며 저지르던 모든 죄악을 버리고 돌아오기만하면 죽지 않고 살리라."(에제18,25-28) 하느님께서는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신다. 개개인의 운명은 각자가 하느님 앞에서 절대적으로 "개별적으로"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조상탓도, 다른 누구의 탓도 아닌 것이다. 오늘날도 불행의 탓을 사회에다 돌리거나 국가에 돌리는 등 공연히 부질없이 책임전가를 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각자가 회개하기만 하면 모든 것은 새로워질 것이며, 영신적 평화가 깃들 것이다. 오늘 복음의 두 아들의 비유는 퍽 인상적이다. 두 아들의 태도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하느님의 초대에 대한 인간의 두 가지 반응형태를 대조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나중에는 행동으로 실천한 맏아들의 태도는 비록 무례하긴 하지만 사실상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였다. 반면에 처음에는 예하고 대답했으나 실제로는 실행하지 않은 작은 아들은 눈가리고 아옹하는 형식주의에 빠졌다. 두 유형은 신앙적 태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맏아들의 경우는 우선은 하느님의 말씀이 부담스럽고 힘겨워 아니오 하였지만 시행착오와 힘겨운 자기반성을 거쳐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된다. 작은 아들은 건성으로 추상적으로 예 하고 대답은 했으나 전혀 노력을 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은 형식주의 신앙, 바리사이적 신앙태도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첫째로 바리사이적 사람들, 율법학자들, 백성의 지도자들은 가장 엄격한 신앙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전례규정을 철저히 지키려 하느님의 뜻이 그들의 뜻과 일치하는 한 쉽게 그 뜻에 예하고 응답하지만 그러나 하느님의 뜻이 그들의 뜻과 맞지 않을 때에는 온갖 수단을 총동원하여 그분을 반대하고 심지어는 예수님께 행한 것처럼 십자가에 처형하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사회주변에는 그들로부터 멸시받고 무시천대받는 강도들, 세리들, 창녀들과 같이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람들, 즉 하느님의 뜻에 아니오라는 대답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사실상 그리스도께서 선포한 복음이 너무나도 힘겹게 느껴졌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청하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들에게 참다운 해방의 메시지요,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그들을 소외시키지도 않고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집에 떳떳이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스도가 선포한 복음은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제시했고 탕자의 비유에서처럼 잃었던 인간의 품위를 완전히 회복시켜주었던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나는 분명히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바리사이파 살람들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31절)고 준엄하게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한 술 더떠,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지극하신다. "사실 세례자 요한이 너희를 찾아와서 올바른 길을 가르쳐줄 때에 너희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고 그를 믿지 않았다."(32절) 여기서 그리스도의 말씀은 바리사이파사람, 사두가이파사람, 종교지도자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즉 세속적 평가기준에 따라 자신들을 첫째라고 여기고 있는 사람들이 하느님나라의 빛에 의해서는 꼴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에 제2독서에서 위의 복음의 첫째 아들과도 둘째아들의 태도와도 다른 그리스도의 모범적인 태도가 소개된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 하느님의 뜻에 철저히 일치하는 모범적인 예를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느님 앞에서 아니오의 부정적 태도도 아닌 또 게으르고 무기력하게 예해놓고 실천하지 않는 태도도 아닌, 의심이나 재고의 여지가 전혀 없는 철저한 예의 태도를 취하셨다. 바오로사도는 "우리가 선포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에게는 언제나 진실이 있을 따름입니다. 하느님의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2고린1,19-20) 라고 말하고 있다. 두 아들의 비유에서 예라 하고 실천하지 않은 작은 아들의 태도는 낙제점수요, 아니오 했다가 뉘우치고 후에 실천한 맏아들은 합격점수(80점정도)이라면,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점수는 100점만점이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우리 모든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간직하도록 즉, 완전한 순종의 태도를 권고하고 있다. 우리도 0점짜리 둘째아들의 길은 만만코 피하고, 더나아가서 80점짜리 첫째 아들의 길보다는 기왕이면 100점짜리 예수님의 길을 따르자. 복음묵상 주제 오늘 주님은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에 앞서 천국에 들어가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혹 나는 남의 실수를 단죄하고, 가능성 없다고 포기한 적은 없었는지 성찰해보고 그가 개과천선한 경우가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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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163 부활 6주일(청소년주일, 생명의날) 이스테파노신부 2003.05.21
162 부활 5주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5.16
161 부활 4주일(성소주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4.30
160 부활3주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4.30
159 부활 2주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4.23
158 예수부활대축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4.05
157 성지주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4.05
156 사순 5주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4.02
155 사순 4주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3.28
154 사순 3주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3.19
153 사순 제2주일 이 스테파노신부 2003.03.15
152 사순 1주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3.05
151 연중 8주일 강론 이스테파노신부 2003.02.26
150 연중 7주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2.11
149 연중 6주일 이스테파노신부 강론 2003.02.11
148 B해 연중5주일 이스테파노신부 강론 2003.02.11
147 설 명절; 주님 봉헌 축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1.29
146 연중 3주일 이스테파노신부 2003.01.29
145 연중2주일(1사무3,3-19; 1고린6,13-20; 요한1,35-42) 이스테파노신부 2003.01.15
144 B해: 주님의 세례 축일(이사야 42,1-7; 사도 10,34-38; 마르 1,7-11) 이스테파노신부 200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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