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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통해 볼 때 인간의 역사는 온갖 죄악으로 점철된 범죄의 역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계속해서 죄를 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우리 죄를 뉘우칠 때마다 용서해주시는 한없이 자비로운 분이시다. 이렇게 볼 때 성서를 통한 인간의 역사는 인간의 죄와 하느님의 용서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제1독서는 하느님을 저버리고 모독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모세가 하느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장면을 그리고 있으며, 제2독서에서는 바오로 사도가 자신의 죄 많은 과거를 상기시키면서 예수님이야말로 죄인을 구하러 오셨다는 하느님의 자비를 전해주고 있다. 한편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은 기쁨 세 가지의 경우를 들어 하느님의 자비를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계신다. 첫째, 잃었던 양 한 마리를 되찾은 이야기다. 성한 양 아흔 아홉을 그대로 둔 채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주인은 그 한 마리를 찾게 되면 기뻐서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와 잔치를 베풀 것이다. 이와 같이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더 기뻐할 것이다. 둘째, 은전 한 닢을 잃어버린 여인은 찾기까지 등불을 켜들고 집안을 온통 쓸며 샅샅이 다 뒤져볼 것이고 찾게 되면 이웃을 불러모으고 기뻐할 것이다.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 셋째, 탕자의 비유에서 보여주고 있는 잃었던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의 태도는 하느님의 심정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이와 같이 세 가지의 비유는 성서의 백미(白眉)라고 할 만큼 하느님의 자비심을 가장 감동적으로 잘 표현해주고 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예수님께 모여드는 것을 비판하면서, "저 사람은 죄인들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까지 나누고 있구나!"하며 못마땅해 하였다. 이 점이 바리사이, 율법학자들과 하느님과의 관점 차이다. 전자는 우리 인간의 사고방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사사오입(四捨五入)의 논리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간들은 양 백 마리 중 한 두 마리는 희생되어도 괜찮다는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 그런데 하느님은 그렇지 않으시다. 어느 한 마리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이른바 무사전입(無捨全入)의 논리라 할 것이다. 즉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 받아들이는 무한하신 하느님의 자비의 마음이시다. 열 살 난 아이가 장에 간 엄마를 찾아 혼자 나섰다. 자신 있게 출발했으나 그 아이 앞에는 겹겹이 둘러싸인 산만이 보일 뿐이었다. 아이는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는데, 걸어온 방향도 모르겠고 온 몸은 가시에 찔리고 가도가도 첩첩 산중이 가로막고 있을 뿐. 울다 지친 아이는 엄마를 부르다 쓰러졌다. 그때 마침 한 나그네가 그 곳을 지나다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그는 아이를 들쳐업고 서둘러 산을 내려와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다가 마침내 아이의 엄마를 찾아주었다. 여기서 길을 잃고 헤매다 쓰러진 아이를 우리 인간이라 한다면, 나그네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시는 착한 목자이시다. 이와 같이 길 잃고 헤매는 죄인도 세리도 하느님의 자비로 용서받고 회개하여 새 사람되기를 바라시는 것이 하느님의 끝없는 자비의 마음임을 오늘 복음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 하느님의 그런 자비가 없었던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나이 산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 숭배할 때 어찌 살아남을 수 있었겠는가. 또 제2독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바오로 사도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박해할 때, 하느님께서 그가 모르고 저지른 과오를 너그럽게 용서해주지 않으셨다면 어찌 용서받고 생존할 수 있었겠는가. 이에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구원 은총에 감읍하여 "나는 죄인 중에 가장 큰 죄인입니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이와 같은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셨습니다."라고 외친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회개의 기회는 늦지 않다. 하느님은 최후의 순간까지도 그 영혼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다에게도 "내 자비의 마음에 눈길 한번만 돌려다오. 그러면 네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오늘 화답송처럼 "나는 일어나 아버지께 돌아가리라."고 외치며 일어서자! 죄인처럼 느껴져 감히 용기가 나지 않을 때 오늘의 복음과 독서를 읽으며 용기를 내자. 그리스도께서는 단죄하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구원하시러 오셨다. 올림픽의 체조선수도 그 썩어 없어질 월계관을 타기 위해 수백 번의 실패를 거듭하면서 피나는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하물며 영원히 썩지 않을 월계관을 쓰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더 수고하고 노력해야 할 것인가! 죄에 넘어졌다고 실망하지 말자. 실패가 없으면 성공도 없다. 에디슨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였다. 대 데레사 성녀도, "하느님의 자비에 비하면 우리의 죄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롯불에 물 한 방울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용기를 내자.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를 굳게 믿고 아버지께 용서를 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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