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22.04.28 22:55

부활2주간-금-(사도5,34-42; 요한6,1-15)-성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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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의 기적 사화는 3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에서 다 다루고 있다.

공관복음은 빵의 기적을 단지 기적사화로 다루고 군중들이 보고 놀랐다는 정도로 서술한다.

그러나 요한복음 사가는 이를 성체성사의 예표로 연결시킨다. 공관복음이 먼저 씌어졌고, 요한복음은 다른 공관복음사가들보다 훨씬 후대에 요한이 90세가 넘어 당신의 신학이 원숙한 단계로 심화되었을 때 기록한 복음서이기에 성체신비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마태오1412절에서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로부터 예수님께서 전해 들으시고, 예수님은 다음은 내 차례구나!’라고 생각하시고 그렇다면 죽음에 앞서 제자들을 집중적으로 양성하여 교회를 세워야한다는 사명을 깨닫고 새삼 황급하게 서두르신다.

그래서 군중을 피해 제자들을 데리고 외딴 곳으로 피하신다. 그런데 군중들이 소문을 듣고 곳곳에서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예수님은 그들이 목자 없는 양떼처럼 측은한 마음이 드시어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고 병자들을 치유하여주셨다.

그러다보니 시간에 늦어져 군중들이 배고플 것을 염려하여 필립보에게 떠보시려고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서 살 수 있겠느냐?”고 질문하셨다.

그러자 필립보가 놀란 표정으로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려면 이백 데나리온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고 대답하였다.

한편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옆에 있다가 여기 보리빵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면, 저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되겠습니까?”하고 말을 한다.

전반부만하고 그쳤으면 중간이라도 갈텐데, 뒷말을 덧붙이는 바람에 안드레아의 부족한 신앙이 들통나버렸다. 그들은 아마도 열왕기 하 4 장에서 엘리사가 보리빵 20개로 백 명을 먹이고도 남은 기적을 읽은 적이 없는가보다.
예수님은 엘리사보다 훨씬 훌륭하신 분이니 5천 명을 먹이고도 남을 기적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고백하였더라면 얼마나 주님이 흐뭇해 하셨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수님께서 빵을 손에 들고 감사기도(give thanks: eucharistesas (eucharisteo))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고 요한복음사가는 설명한다.

공관복음에서는 하늘을 우러러 찬미하고 혹은 축복하시고”(eulogesen: bless)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으나 유독 요한복음은 “eucharistesas(eucharisteo)” 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Eucharistia 라는 성찬예식과 동일한 표현을 하고 있다. 요한복음에서는 후일 최후의 만찬에서 다른 공관복음에서는 다 언급하고 있는 성찬례가 나오지 않고 세족례만 나오는 것도 이미 빵의 기적에서 성찬례를 거행하였다고 전제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수님이 빵의 기적 후 군중들에게,“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그러자 군중들이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하자 예수님께서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나를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하고 예수님이 말씀 하셨다.

그러시면서 예수님은 그들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와 당신의 몸인 성체 곧 생명의 빵을 대조하여 말씀하신다.

하늘에서 내려온 빵인 내 살을 먹는 사람은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라고 하신다.

여기서 만나를 먹다성체를 먹다의 동사를 구별하여 사용하신다.

만나를 먹다는 동사는 에파곤(ephagon: 보통 음식 먹다와 같음)이라고 하고 성체를 먹다는 트로곤(trogon:꼭꼭 씹어 먹다. 음미하며 먹다) 이라고 한다.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 곁을 떠나갔다. 당신 살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라고 하니까.

12제자만 남았을 때 주님은 그들을 향해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나서서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예수님은 성체성사를 세우시고 오늘날도 성찬의 식탁에서 빵을 축성하시어 당신 살이 되게 하시고 그 당신 살을 우리 음식으로 주시고 말씀의 식탁에서 하느님 말씀을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주심으로써 우리가 당신을 닮도록 배려하신다.

또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빵을 나누어주고 남은 조각을 버리지 말고 모으라고 명하신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이런지시를 하지 않으신다. 다만 남은 빵을 모았더니 12광주리에 가득 찼다고만 한다. 어떤 차이일까?

요한복음에서는 빵의 기적을 성체성사로 보기 때문에 이미 축성된 빵을 버려서는 안 되는 성체인 것이다. 예수님은 이를 의식하시고 모으라고 하신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남은 빵을 모았더니 12 광주리에 가득하였다고 한다. 12 라는 숫자는 완전수자요 12 지파 혹은 세계만민을 포함하는 상징수라고 할 것이다.

성체축성 예식을 통해 이 빵이 성체로 변하였다면 남은 12 광주리에 가득한 빵도 성체라고 한다면 감실에 보관하여야 할 것이며 예수님은 세말까지 우리와 함께 머무시기 위한 임마누엘의 방법으로 오늘날 모든 성당의 감실에 늘 우리와 함께 성체의 현존방식으로 머물러 계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함께 머물기를 원한다. 예수님의 이 사랑을 감사하며 우리도 자주 성체 앞에 머물기로 약속드리자.

묵시12,11에 성도들이 어린양의 피와 하느님 말씀으로 마귀를 쳐 이겼다고 한다. 우리가 영신전쟁터인 이 세상에서 마귀권세를 이길 수 있는 무기는 성체와 말씀인 것이다. 오늘 빵의 기적사화를 단순한 식량증가의 기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주시는 성체성사의 예표임을 기억하고 성체와 하느님 말씀에 대한 새로운 존경심과 관심을 갖도록 노력하자.



오늘 1독서 내용을 잠시 묵해보자.

가말리엘의 영성을 가만히 영성이라고나 할까? “냅둬버려 영성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흔히 잘 모르면서 성급하게 판단하여 일을 그르칠 때가 많다. 기도하면서 하느님 뜻을 찾으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왔는지 사람으로부터 왔는지가 분명히 판별이 될 때가 많다.

그런데 가말리엘에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그의 수제자인 바오로사도는 예수님의 열렬한 제자가 되어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베드로와 쌍벽을 이루는 교회의 큰 기둥이 되었건만, 스승인 가말리엘은 바오로가 그렇게 변하였을 때 필경 제자를 만났을 것이고 제자인 바오로는 얼마나 열정적으로 스승에게 예수님에 관해 설명하였을 것인가?

그런데도 그는 중도의 입장만 견지할 뿐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바리사이에 머무른다. 예수님을 믿는 데는 중립지대는 없다.

아니면 아니오둘 중 하나이다.

세상에는 예수님을 반대는 안 하지만 그렇다고 믿지도 않는 회색분자들이 많다. 그들은 천국에 갈지 못 갈지 불안하다. 마치 판문점 대기소에서 여차하면 이북으로 휩쓸려 넘어가거나 혹은 운 좋으면 남한으로 넘어올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인 것이다.

내 영생을 좌우하는 신앙의 길에 그렇게 애매모호한 중립지대에서 불안하게 지내서야 되겠는가?

천국은 힘센 자의 소유요 공로에 의해 주어지는 상급일진대, 애써 노력한 만큼 천국의 나의 처소가 결정되는 것이다. 세상에서도 그 분야에 미쳐야 성공하거늘 영생을 좌우하는 천국상급을 쟁취하는데 그렇게 성의 없이 적당히 준비해서야 안 될 것이다.

최선을 다해 주님을 열렬히 사랑하고 복음전파에 노력하고 오늘 사도들처럼 주님을 위해 모욕을 받고 고통을 겪는 것을 특권으로 알고 영광으로 받아들이면 먼 훗날 주님 앞에 설 때 주님이 날 꼭 빼 닮았다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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