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묵상(평일)
2014.02.18 20:51

2014-2-19-6주간-수-야고1,19-27; 마르8,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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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간--야고1,19-27; 마르8,22-26

 

1독서인 야고보서는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고 한다.

빨리 들으라하는 이유는 마음 속에서 생각하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여 신중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말은 일단 입을 떠나면 마치 업질러진 물과 같이 다시 거두어들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말씀(verbum)과 말(voice; vox; voce)을 구별하여야 한다. 말씀은 곧 하느님의 말씀을 뜻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통 주고받는 말은 소리에 불과할 때가 많다.

그런데 우리 입이 하느님의 말씀을 많이 말하면 우리 입이 거룩해지고 우리 인격이 또한 존중받게 된다.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어오신 육화사건은 또한 우리 안에 들어온 말씀이 우리 삶을 통해 육화되기를 원하신다. 즉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삶 안에서 육화하는 것이다. 말씀이 실천으로 옮겨져야 완전한 육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verbum caro factum est)는 표현을 한자로 성실할 성(=+)으로 압축 표현할 수 있다.

중용철학(中庸哲學)의 핵심내용이 성은 하늘의 도요, 성을 행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라고 한다.

말씀이 육화된 것은 하늘의 도요, 욱화의 신비를 실천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라는 것이다.

동양의 사상에도 어쩌면 하느님이 지혜를 비추어주시어 하느님의 강생육화의 신비에 근접하는 사상을 전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양사상이라고 하여 하느님의 지혜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할 수 없다.

명나라 때 주자학의 한계를 느끼고 일어난 신흥철학인 양명학에서도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근간으로 아는 것을 실천하여야함을 강조하였고, 이때 마침 천주학이 중국에 들어오고 한국에서도 천진암 강학회의 학자들이 주자학에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학문을 찾다가 천주학을 접하게 되었고 여기서 비로소 그들의 학문적 갈증을 해소하고 더 나아가 신앙을 찾게 되어 한국천주교회의 온상이 된 것이다.

오늘 독서에서 야고보사도는 듣는 것과 말하기와 실천의 삼중적 feed back 과정에서 주의를 환기시키기를 화를 내지 마십시오. 화를 내는 사람은 하느님의 정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라고 한다.

왜냐하면 화를 내면 이 feed back 과정이 송두리째 끊어져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듣는 것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하느님 말씀도 곡해하게 된다. 이성이 마비되기 때문이다. 또한 말도 절제가 안 된다. 감정의 온갖 찌꺼기가 흙탕물처럼 뒤집혀 솟아오른다. 뿐만 아니라 행동도 거칠어진다.

모세도 므리바에서 화를 낸 보속으로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한다. 우리 얼굴에 눈도 두 개, 귀도 두 개인데 입은 두 가지 기능을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밖에 안달아주셨다. 두귀로 민첩하게 듣고 두 눈으로 분명하게 보고, 그러나 말은 신중하게 더디 하라는 뜻일 것이다.

고시조 중에, “말하기 좋다하여 남의 말은 말을 것이 내가 남 말하면 남도 내말할지니,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많을가 하노라.”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소경을 단번에 고쳐주실 수도 있지만 4단계로 치유행위를 시행하신다.

1)-먼저 그의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시어,

2)-다음으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고,

3)-안수한 다음 무엇이 좀 보이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사람이 나무같은 것이 보이고 사람 같은 것이 보인다고 한다.

4)-네번째로 그의 눈에 손을 대시자 눈이 밝아졌다.

거듭난 생명 곧 재창조행위를 상징한다.

이는 영신적 진보의 단계를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첫 술에 배부르지 않고 시간과 단계에 따라 점진적으로 진보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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